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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럽을 꿈꾼것은 단순한 이유에서 였다.
영화 ‘비포 선셋’의 중반즈음, 에단호크가 줄리델피를 유람선에 태우고 세느강을 건너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본 나는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 가지 않은 내 인생은 모든게 거짓이 된 듯 서러워졌다.

‘너무 아름다워서였다’

실제 영화는 크게 특별할만한 장면을 담고있진 않다.
세느강. 그 위로 노틀담성당이 서 있고, 햇살은 세느강 북쪽을 비춘다. 그리고 긴 생머리를 휘날릴 정도 만큼의 바람만 분다. 그렇게 대사가 9분간 흐른다.

하지만 내겐 ‘그 자체’가 특별했다. 그 후 나는 11번의 영화를 더 보았고, 가보지도 않은 그곳을 이토록 그리워 하게 되었다.


그렇게 4년ㅡ
제법 빨리, 꿈은 현실이 되었다.


 


흔히 첫 여행지를 ‘가장 인상깊은 여행지’라고도 한다. 그리고 내 첫 여행지는 런던이였다. 공항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짙은 회색구름, 런던 특유의 냄새에 이미 설레임은 없고, 두려움만이 내몸을휘감는듯 했다.


 

며칠이 지나도 런던은 차가웠다. 사람도ㅡ 음식도ㅡ 심지어 제법 따뜻한 날씨도 내겐 차가웠다. 서러웠다. 그토록 큰 괴리는 느껴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난 철저히 외로워야했다. 내나이 스물다섯이고 유럽은 애당초 ‘구경’이 아닌, 내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위함이였다. (다소 심오하지만, 실제 그랬다)

하지만 내 실체는 그 공허함을 벗어나려고 습관적으로 술과(하이네켄 2병) 함께 공허함속을 한참을 뒤척인뒤 잠이 들곤 했다.


 


1월19일
평소와 다를게 없이 버스에 올랐다. (숙소앞 버스는 24번뿐이였고, 그것을 탔다)


순간, 이상했다. 눈을 떠 보니 주위엔 아무도 없었고 시계를 보니 한시간쯤 지난 상태였다. 잠이들었던 것이다. 다행히 차 문은 열려있었고 나는 재빨리 버스 밖으로 뛰쳐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 언덕에 다다르고 나서야 발걸음을 멈췄다.

이십분쯤 앉아 있었을까? 저 멀리 긴지팡이를 짚고 걸어오시는, 허리가 심하게 굽으신 노인 한분을 보았다. 그렇게 언덕까지 올라 오시는데 십여분이 걸리셨다.

‘명쾌했다’


비로소 나는 내가 ㅤ쫒기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ㅡ 돈이 넉넉하지 못하고 배는 고플지언정 마음은 여유로 워야한다 ㅡ 내가 그토록 다짐했거늘,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날이 런던의 마지막 오후였다.


 

파리는 런던과 가깝지만, 사뭇 달랐다. 모든게 ‘예술’안에 존재하였으며 길가에 개똥 조차도 이유가 있을것만 같았다. 이렇듯 파리의 첫인상은 퍽 낭만적이였다.


 


나의 목적지는 항상 그날 아침 욕실에서 정해졌다. 바람이 좋은 날에는 세느강을 걷고, 부슬부슬 비가오는 날에는 줄곳 미술관을 향했다.

1월23일
창 밖을 보니 비가 오진 않지만 전날 비로 많이 젖어있는 상태였다. 나는 전날 갔던 루브르를 떠올렸다. 사실 조금 다른 루브르를 찍어보고 싶었었다. 이젠 제법 익숙하게 ‘가르 드 리옹’(4개 노선이 엉켜진 복잡한 역)을 지나니 ㅡ 왠지 파리지엥이 된듯 ㅡ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렇게 나는 또(다른) 루브르를 향했다.


 

 


담당 주치의는 내게 '골육종은 생존률이 20%미만며 살아나더라도 오른쪽 허벅지 아랫부분을 절단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왼쪽보다는 7cm가량 짧지만 아직도 제법 단단한 내 오른쪽 다리가 있다. 걸을 수도 있고, 운전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있는곳은 유럽이다.

1월25일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지금 이 순간을 감사했다. (2009년 1월 25일 오전 10시 03분)
ㅡ 마들렌대성당 미사中


 

신기하게도, 파리는 어딜가도 그곳이 파리였다는 것이다.


 

유난히 화창한 아침이었다. (2주만에 첫 맑은날이기도 했다)


 

1월31일
무작정 옷을 갈아 입고 한참을 걸었어
긴 니트를 입어도 스며드는 바람은 내 마음같았고 나는 넓게 퍼진 작은 균열들을 보았어
하지만 난 여전히 이 멋진 세상에 살고있어
쉽게 얽매이진 않을거야

그렇게 갑자기 독일에 가고 싶어졌어
인도에도 가고싶고
다시 런던아이에 올라가 사진도 찍고싶어졌어

나도ㅡ
나도 준비가 되면
길이 보일때까지 걸어다가다 보면
머지않아, 이 위대한 일을 내가 해낼꺼야


 

사실 나는 파리에서 너무 많은것을 쏟았다. 그리고 도착한 스위스는 아름다웠지만, 큰 감흥은 없었다.


 

2월4일
기차를 기다리는 그 ‘기다림’이 좋다.


 

결국 나는 단한장의 사진도 ‘찍히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유럽에 왔지만, 오지 않은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겐 꿈이 있다. 그 꿈은 ‘유럽’이다.

내게 꿈과 현실은 결코 공존할 수 없다.
하지만 각각 독립적으로는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유럽’에 왔지만, 오지 않은것이다.


그리고 내겐 아직 꿈이 있다.


 


2월6일
Zurich시간 출발 3분전
난 지금 Coldplay의 Viva La Vida를 듣고 있다.


이륙

순간 내 눈이 뜨거워 진다.
그리고 숨이 가뿔 정도로 벅차 오른다.

아,

아ㅡ

내가 사랑한 Paris여
소중한 Switzerland여, 한없이 아련한 London이여!

그리고 내가 그곳에 있었다.



나 이제, 그 스쳐지나간 모든 흔적까지 그리워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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