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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uge.
나는 항상 혼자 여행을 한다. 그렇다고 혼자하는 여행이 엄청나게 재밌거나 더 행복한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재미도 없고, 정말 많이 외롭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눈길 둘 곳도 없고, 2인분 이상 메뉴는 항상 제외다. 말도 더 안통하고. 심지어 돈도 더 많이 든다. 사진 찍어주는 사람도 없으니 그 흔한 에펠탑 인증샷 하나 없다. 화장실 한번 가는 것도 일이다. 캐리어부터 크로스백까지 모든 짐을 다 들고 가야한다. 그것도 부족해 먹다 남은 커피잔을 치울까 갔다오는 동안 노심초사 해야 한다. 또 혼자면 말이 없다. 가끔 멋진 풍경에 목 끝까지 말이 차오르지만 결국 생각으로 끝난다. 한번은 운적도 있었다. '집에 너무 가고 싶어서' 그래도 나는 혼자 여행을 한다.

중학교 때 나는 많이 아팠다. 아주 많이. 담당 주치의는 가망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12번의 항암치료와 4년간의 병원생활을 하면서 나는 생명만큼 소중한 한가지를 얻었다. '철저한 외로움 속에서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는 진리. 마치 혼자 여행하는 것도 이와 같았다. 지리적인 고립은 어느새 내 자신에게 말을 걸게 되고, 내 자신을 발견한다. 나를 이해하고. 내 자신을 알아 간다. 나. 자신.


 


3월 28일
입사 동기들은 적금을 들고 금리에 연연할 때 나는 충무로에 가서 무이자도 안되는 600만원짜리 카메라를 긁었다. 무엇인가에 홀린듯. 그리고는 그걸로도 부족한지 습관적으로 여행책자들을 들쳐보며 루트를 짜고 렌트비용을 계산하고 있었다. 월급이 많은 편도, 그렇다고 집에 돈이 많은 건 더더욱 아니였다.

나는 이 한마디만 믿고 있었다.

'남는 건 사진뿐'

물론 진짜 남은건 통장잔고 7만원이었지만

 

나는 파리에 약하다. 가끔 불어가 노래처럼 들릴정도로. 좋아하는 영화는 비포선셋.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미셀공드리. 소설가 알랭드 보통. 에스프레소... 파리여자가 세상에서 제일 이쁘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요즘은 최악의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 푸조308마저 이뻐보인다


 

이상하리만큼 간절했다. 생각하기만으로 차올랐고.

 


8월 15일
어쨋거나 그렇게 나는 파리에 내렸다. 3년 7개월만에 다시


 

오전 9시반. 카페가 모두 닫아 한시간을 해맸다. 다행히 열려있는 한 가게에 들어가 클럽샌드위치(7유로)와 콜라(4유로)를 시켰다. 콜라가 조금 비싸다는 생각은 오르세 줄이 너무 길다의 생각으로 바뀌었다. 맞다, 그리고 오늘은 'Placed'Italie'에 있는 AVIS에서 폭스바겐 골프를 렌트하는 날이다. 으아. 신이 나야 할것만 같아서 갑자기 신이났다.


 

조수석 창문을 열면
세느강이 내려다보이는
낡은 렌트카에서 한손으로 운전을
다른 한손으로는 바게트를 먹는 꿈
소박하지만 무척 비싼 꿈.


'이건 분명 꿈이 아니였다'


 

그런 파리가 종종 낮설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3년전 처음 경험했던(그리고 그 이후에 바리스타까지 준비하게 만들었던) 그 에스프레소와는 사뭇 달랐다. 별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회사에 있는 에스프레소보다 별로였다. 그리고 한번 들어가면 4~5시간씩 구경했던 오르세와 루브르는 30분 이상을 못견뎌했다. 고흐의 그림도 그저 내 다리를 아프게 만드는 그림으로 밖에 안보였다.


 

한번은

'Shakespeare and Company'에서 혼자 사진을 찍고 있는 여자에게 대뜸 '사진 찍어드릴까요'라고 말했다. 숫기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내가 그렇게 말했다니. 나도 내가 내뱉은 말을 어찌할 줄 몰라하며 그 말을 다시 담고 싶어할 때쯤 그녀가 웃으며 감사하다고 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비포선셋 이야기로 세느강을 걷기 시작했다. 후기 인상파에서 각자의 커피취향까지. 다리가 아프면 앉고. 괜찮아 지면 다시 걸었다. 8시간을 그렇게.


 

한번은

화가 났다. 날씨에 화가 났다. 너무 맑아서. 평소에 비를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토록 비를 원하던 적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파리는 비 올 때 가장 이쁘다)


 

그렇게 나는 파리가 낯설어질 때즈음. 파리를 떠났다


 


8월18일
'안시'까지 예상소요시간 6시간반. 휴게소와 첫장거리를 감안한다면 대략 9시간은 가뿐히 넘길듯. (벤츠고 나발이고 mp3하나 연결 못하는 차때문에)8장에 cd를 사서 가는중

지금은 마론5 신보를 듣고 있다.
박자에 따라 엑셀을 맞춰 밟고. 안전벨트를 기타처럼 튕긴다.
그러다 백미러 속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다시 정적. 하아. 7시간반 남았다.


'그래 맞아, 내가 이걸 보려고 620km를 운전해서 여기에 온거야'라고 (속으로)외쳤지만, 피곤했다. 자고 싶어졌다. 기가막힌 풍경들을 기대했지만 프랑스고속도로 풍경은 경부고속도로 보다 못했다. 온 몸이 멍이든 것처럼 뻐근해졌다.


 

8월19일
5도씨의 찬 공기. 내려쬐는 강렬한 태양. 나는 지금 몽블랑 정상에 서 있다.
콧 속엔 찬 바람이 빰에는 태양이 스친다. (아.)


 


파리를 제외하고는 모든 도시에서 1박씩 했다. 그래서 매일 아침이면 마치 의식처럼 일어나 짐을 싼다. 숙연하게. 그리고 짐을 다 싸고 그 호텔을 나오기 전에 '그것'을 5분 동안 바라본다. 다시 한번 숙연하게. 째깍. 째깍.

8월20일
5시 기상. 6시 출발. 나는 서둘렀다. 모나코의 태양을 받으러. 흠뻑!


 

그랬던 모나코는 사람'만' 많은 도시였고


 

니스는 그저 더운 도시였다.


 

칸느는 여기가 모나코인지 니스인지도 모르겠는 도시(정말 최악이였다!)


 

그렇게 남프랑스에 실망을 하고 있을 무렵. 나는 소설책에서 '다음 페이지에선, 그 사람이 살해당하지 않기를' 수십번외치고 책장을 넘기듯 '다음 도시는 나를 구원해주세요'를 수십번 외치며 칸느의 경계선을 넘었다.

그리고 나는 아를(고흐의 도시)이라는 곳을 만났다.


 

고흐가 왜 그렇게 그림을 그렸는지 알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뜨거웠다. 들고 간 라이카도 너무 뜨거워져서, 손을 거의데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아를에서 에어컨을 켜는 건 불법처럼 느껴졌다. (햇살이 너무 좋았다)


 


8월21일
아를에서 저녁식사. 여기는 통상 저녁을 8시에 하나보다(기다리다 죽는 줄) 그렇게 꼬박 1시간반을 식사했다. 불량식품 맛이 나는 전통소주 1병과 하이네켄 2병을 마시고 나니 알 딸ㅎㄴ다. 행복하다.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행복이다.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를 타러 파리로 가는길이다. 리옹을 지나고 있을 때쯤 경찰 오토바이 3대가 내 차를 감쌌다. 그 중 한 오토바이가 검지로 나를 가르키며 '차를 안전한 곳에 세워라'정도를 말했겠으나 너무 놀란 나머지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웠다. 그 후 수갑을 꺼내며 중얼거리는데 정말 어지러워서 바닥에 앉아 거의 울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여기서 정신 못차리면 비행기를 놓칠것 같았다.


 


내가 여행하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몇분이세요?'였다


 

내가 여행하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혼자'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지 한달쯤 되었을 때 프랑스로 부터 한장의 편지가 날라왔다. 큼지막하게 씌어져 있는 '과태료' 그제서야 나는 내가 과속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10월 7일
지금 내 책상위에는 여행사진들을 대신 그 자리에 과태료 종이가 붙어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그렇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을 때 보다 혹여나 경찰서 갈까 두려워서 시키지도 않은 똑바로 걷기를 할 때가. 터미널에서 혼자 덩그렇게 앉아 멍하니 사람들을 보고 있을 때가. 지하철을 잘못타서 몇번을 다시 돌아올 때가. 길 고양이를 따라다니며 그 고양이와 얘기 할 때가. 고독과 외로움에 몸서리쳐질 때가 더 그립고 더욱 아름다웠다. 여행은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외롭고 고독할 때도 있는 법이다. 또 그렇게 혼자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항상 삶의 주체속에서 아웅거리며 살다가 한번쯤은 그들 삶의 방관자가 되어 보는 것. 그것이 여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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